등가교환
기사가 되지 못했으니 레이디가 되어야만 했다. 14살이 되어서도 아무런 진전이 없자, 세상은 더이상 길에서 벗어나길 허락해주지 않았다. 올가는 영주의 '딸'이라는, 본인에게 주어진 원래의 역할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원하는 모습으로 있을 수 없었다. 여자로 변해가는 자신의 몸이 두려웠다. 어른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의 몸에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버지는 올가에게 드레스를 입으라고 하셨다. 평소에 입던 '남자아이같은 옷'은 전부 옷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올가는 거울 속의 자신이 싫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잔인하지. 세상은 언제나 '정상'만을 원하고 결국 선택지 중 남은 것은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것' 뿐이었다.
올가는 그의 영지를 사랑했다. 물론 그의 가족들도 사랑했다. '지키고 싶다'라고 생각했었던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잖아. 이제 너도 철이 들어야지... 지금의 생활, 지금의 관계를 '지키고 싶다면' 말이다. 언젠가 깨닫고 나서부터는 올가는 정말 얌전해졌다. 모두를 위해 '이상적인 여자아이'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는 검 연습 대신 또래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지내게 되었고, 언젠가부터는 마을 축제에서 남자아이와 손을 잡고 춤을 추게 되었으며, 언젠가부터는 동생에게 '언니'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다음해에는 먼 영지의 남자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이제와서는 예전의 '남자아이같은 모습'이 정말 먼 일처럼 느껴졌다. 무뎌진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거짓말을 할 때와 닮은, 어딘가 불편한 감정을 지우기 어려웠다. 사실은 아직도 오라버니라고 불러줬으면 하고 결혼같은거 하기 싫어. 동생은 올가를 걱정했다. 언니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면서 행복해지셨으면 한다고. 올가는 대답했다. "그치만 난 이제 어린애가 아니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은 언제나처럼 돌아간다. 그리고 세상이란 항상 별거 아니라는 듯 운명을 눈 앞에 던져놓는 것이었다. 그 날은 올가의 20살 생일이었다. 마슬레니차의 마지막 날이었고, 뒤늦은 눈이 내렸다. 그리고... 프로슈테르다 함락의 날. 올가는 영지의 모든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혼자 프로슈테르다에 남았다. 이렇게 용기를 낸 것은 오랜만이었다. 가진 것은 작은 십자가 하나와 어릴적 쓰던 검 한 자루 뿐. 사실, 올가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검 쓰는 법은 오래전 잊어버렸고, 상대는 군대. 여기서 살아남기는 누가봐도 무리였다. 그러나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굉장히 후련한 편이다. 그동안 스스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지쳐있었던 걸까. 어짜피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산 삶이다. 스스로를 연기하면서까지. 나보다는 영지의 모두가 살아남아준다면 그걸로 괜찮다. 지키고 싶었으니까. 정말로 모두를 지키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내가 이대로 여기서 죽는다면... 있었던 일을 모두 되돌아보며 마지막으로 생각한다. 계속해서 숨겨온 '진짜 나'는 결국 아무도 모르는 채로 사라지는걸까? 모두가 기억하게 되는 건 이상적인 연기자였을 뿐인 '가짜 나'인걸까. 하얀 입김을 내보내면 멀리서 희미하게 찬송가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 그런건 조금... 쓸쓸할지도 모르겠어...
뷔오의 1주년을 축하합니다~
X에서 광란의 뷔오 님 : "✦ 올가 알레니, 가짜 자신을 내세워 고향의 재앙을 맞이한다.